서 론
생물다양성은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등과 같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위협받고 있으며, 생물다양성의 보전을 위해서는 생물종의 멸종, 유전자 다양성의 유실, 생물 군집의 파괴, 서식처의 변질 등을 방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보전생물학적 노력이 필요하다(Heywood and Iriondo, 2003). 그러나 환경오염, 외래종의 침입, 기후변화 등의 요인으로 인해 생물 종 개체수와 서식지 범위는 감소하고, 생물 서식 공간의 질적 상태 또한 쇠퇴하고 있다(Butchart et al., 2010). 전 세계 관속식물 중 약 20%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으며(Pimm and Raven, 2017;RBG Kew, 2016), 특히 좁은 분포 범위를 가지는 희귀식물은 기후 및 환경조건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넓은 분포역을 가지는 일반 식물종에 비하여 기후변화에 따른 생육 위협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Ohlemüller et al., 2008).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긴 지형적 특징을 가지며, 특히 제주도는 대륙과 격리된 섬이라는 지리적 위치, 난온대에서 아고산대에 이르는 다양한 기후대 분포, 화산섬이라는 독특한 지형적 환경 등으로 인해 희귀·특산식물이 풍부하고 생물다양성이 높다(Kim, 2006;Kim, 2009). 제주도의 희귀식 물은 적색목록 위협 범주의 157분류군을 포함하여 총 536 분류군으로 제주도 전체 식물상의 26.9%에 해당하며, 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보전생물학적 전략 수립이 주목되고 있다(Kim, 2009;Kong, 1998).
성널수국(Hydrangea luteovenosa Koidz.)은 2004년도에 발표된 한반도 미기록종으로 수국과(Hydrangeaceae)에 속하는 낙엽성 관목이다. 높이 1.5m 내외이며 산수국 (Hydrangea serrata (Thunb.) Ser.)에 비해 엽신은 길이 3-5cm로 소형이고, 산방화서의 주변화는 1-3개로 매우 적게 달리는 특징을 가진다(Kim et al., 2016;Moon et al, 2004). 세계적으로 한국과 일본에만 국한적으로 분포하며, 일본에서는 혼슈 남부 이남에 넓게 분포하는 반면(Iwatsuki et al., 2001;Satake et al., 1989), 한국에서는 제주도 한라산의 성널오름 일대에만 매우 제한적인 분포를 가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Korea National Arboretum, 2021;Moon et al., 2004;National Institute of Biological Resources, 2021). 제주도의 성널수국은 한반도 미기록종으로 보고될 당시 65개체(Moon et al., 2004)가 보고되었고, 이후 추가적인 연구에서 285개체(Choi et al., 2017), 210개체(Yang et al., 2021)가 확인되었다. 성널수국의 좁은 분포 면적과 적은 개체수로 인해 국립수목원(Korea National Arboretum, 2021)과 국립 생물자원관(National Institute of Biological Resources, 2021)은 적색목록 취약(VU) 범주로, Kim(2009)은 위급(CR) 범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성널수국 제주도집단의 주요 위협요인은 (1) 계곡을 따라 출현하는 생육 특성으로 폭우에 의한 자연적 유실, (2) 극소 규모의 개체군과 희귀성으로 인한 인위적 훼손 가능성이 논의된 바 있다(Korea National Arboretum, 2021;Moon et al., 2004;Yang et al., 2021). 또한 극히 고립된 분포로 인해 일본집단에 비하여 유전자 다양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Choi et al., 2017). 이러한 선행연구의 결과는 한반도 희귀식물인 성널수국에 대한 중요한 생물학적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널수국에 대한 개체수 증감, 자생지의 주요 환경 조건 및 주된 위협요인 파악에 대한 구체적인 보전생물학적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본 연구에서는 한반도 희귀식물인 성널수국의 정확한 개체수와 분포 양상을 파악하고, 식생학적 종조성 및 서식처 환경 분석을 통해 생태 특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성널수국의 효율적인 현지내 보전 전략을 수립하고, 식물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기초 자료를 제공하고자 한다.
연구방법
1. 조사 지역의 자연환경
조사 대상지는 행정구역상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일원이며, 산림청이 관리하는 한남시험림(1,203㏊)의 출입제한 구역 내에 위치해 있다. 조사 범위는 성널수국이 분포하는 성널오름 일대의 한라산 중산간 지역 해발고도 500m 부근에서 서중천 상류 구간을 따라 조사하였다(Figure 1).
조사 지역이 포함된 서귀포시 일대의 지형은 남측 해안을 따라 경사가 완만한 저지대가 좁게 발달하고, 한라산 (1,947m)으로 이어지는 북측은 조면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다소 험준한 지형을 형성한다. 조사 지역인 서중천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남동 방향으로 흘러 내려가는 3차수 하천으로 전형적인 화산섬 하천인 건천이다. 하류로 갈수록 다량의 용천수가 용출되는데 비가 내린 후 급격하게 유량이 증가하여 활발한 하각작용이 일어나 기복이 심한 하곡을 형성하는 것이 특징이다(Kim, 2003;Park et al., 2000).
최근 10년간 기후자료(2014-2023)에 따르면 제주도의 남쪽 지역(서귀포시 17.1℃, 2,101㎜)은 연평균기온과 연평균 강수량이 북쪽 지역(제주시 16.9℃, 1,477㎜)보다 높다. 또한 동쪽 지역(구좌읍 16.0℃, 1,715㎜)과 서쪽 지역(한경면 16. 2℃, 1,315㎜)은 기온은 비슷하지만 동쪽 지역의 강수량이 더 많다. 한라산(성판악 11.2℃, 4,553㎜)에 가까워질수록 해발고도가 높아지면서 기온은 낮아지고 강수량은 급격히 많아진다. 한라산 남동측의 중산간 지역에 위치한 조사 지역(남원읍 한남리)은 연평균기온 14.5℃, 연평균강수량 2,909 ㎜로 해안에 가까운 저지대보다 기온은 낮고 강수량은 높은 경향성을 가진다(Korea Meteorological Administration, 2024).
조사 지역 일대는 식물사회학적으로 동백나무군강(Camellietea japonicae Miyawaki et Ohba 1963)에 해당하며 구실잣밤나무, 붉가시나무, 종가시나무, 후박나무 등의 다양한 난온대 상록활엽수림이 발달한다(Choi, 2012;Kim, 1991). 고도가 높아지면서 너도밤나무-신갈나무군강(Querco-Fagetea crenatae Miyawaki et al. 1968)의 개서어나무, 서어나무, 물참나무, 졸참나무 등이 우점하는 냉온대 하록활엽수림의 자연림 및 이차림이 혼생한다(Kim, 1990;Kim, 1992). 또한 한남시험림 내에는 삼나무림, 편백림 등의 조림지가 조성되어 있다.
2. 조사 및 분석 방법
성널수국의 분포 현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2023년 6월부터 11월까지 3회에 걸쳐 성널수국 전수조사를 수행하였다. 서중천 상류 구간의 계곡부 양쪽 사면을 따라 성널수국의 분포를 확인하고 개체수를 기록하였다. 성널수국개체군(H. luteovenosa populations)에 대한 식생조사는 성널수국이 군락을 이루고 생육지 환경 조건 및 종조성 구조가 온전한 9지점을 선정하여 수행하였다. 또한 하천의 상·하부 지역에서 성널수국의 분포가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 비생육지역 중 성널수국개체군과 유사한 숲 구조를 가지면서 식생학적으로 상관 및 종조성이 달라지는 입지를 대조군으로 선정하여 식생조사를 실시하였다. 식생조사는 Braun-Blanquet 식물사회학적 조사 방법(Braun-Blanquet, 1932;Kim and Lee, 2006)에 따라 수행하였다. 각 조사지점에서 GPS 좌표, 해발고도, 사면방위(16방위 및 방위각), 경사도, 암석노출률 등의 환경 정보를 기록하였다. 성널수국개체군의 종조성은 층위별 출현종을 기재하였고, 피도는 1-9등급의 변환통합 우점도(ordinal transfer value, OTV)를 이용하였다(Kim and Lee, 2006;van der Maarel, 1979;2007). 식물군락의 종조성적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 각 군락 출현종의 양적·질적 합성지수인 기여도 비율(percentage of net contribution degree, P-NCD; Eom, 2010)을 산출하였다.
식물군락과 환경조건 간의 상관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CANOCO for Window 4.5 (ter Braak and Šmilauer, 2002)를 이용하여 Canonical Correlation Analysis (CCA)를 수행 하였다. 분석을 위해 각 식생조사 지점의 출현종 피도와 환경 변수를 사용하였다. 환경 변수는 해발고도(altitude), 경사도(inclination), 암석노출률(rock exposure), 사면방위를 선정하였다. 사면방위는 방위각(°)에 대한 cos θ로 계산하여 남북 방향을 나타내는 북향성 지수(northness index)와 sin θ로 계산하여 동서 방향을 나타내는 동향성 지수 (eastness index)를 각각 산출하였다. CCA 다이어그램은 최우선 축인 제1축과 제2축으로 나타냈으며, 환경 변수는 화살표, 조사구는 점으로 좌표를 나타내었다.
성널수국개체군의 출현종 형질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 교목 (tree), 관목(shrub), 광엽초본(herb), 화본형초본(graminoid), 덩굴(climber), 착생(epiphyte)으로 구분한 생육형(growth forms)을 분석하였다(Mucina and Rutherford, 2006). 또한 상록성(evergreen)과 낙엽성(deciduous) 식물, 목본성(woody)과 초본성(herbaceous)식물, 양치식물(pteridophyte)의 구성 비 등을 분석하였다. 성널수국개체군 식물상의 형질 특성을 제주도 삼림식생의 식물상과 비교하기 위해 제5차 전국자연 환경조사의 제주도권역 식생자료(Choi and Kang, 2021;Jung and Lee, 2021;Lee and Jo, 2021;Ryou and Kim, 2021)를 이용하여 상록활엽수림(구실잣밤나무림, 붉가시나 무림, 후박나무림 등) 및 하록활엽수림(개어서나무림, 서어나무림, 졸참나무림 등)의 식물상을 각각 추출하여 분석하였다. 성널수국개체군 출현종에 포함된 한국의 적색목록 희귀식물 (Korea National Arboretum, 2021) 및 특산식물(Chung et al., 2023)을 확인하였다. 희귀식물 적색목록 범주는 위협 범주(threatened categories)에 해당되는 위급(critically endangered, CR), 위기(endangered, EN), 취약(vulnerable, VU) 범주를 구분하였다(IUCN Standards and Petitions Committee, 2022;National Institute of Biological Resources and Korean National Red List Committee, 2015). 식물명은 국가표준식물목록(Korea National Arboretum, 2020)을 따랐다.
결과
1. 개체군 분포 양상
성널수국 제주도개체군은 서중천 34지점에서 총 1,077개체의 생육이 확인되었다. 성널수국은 한라산 중산간 지역에서 수직적으로 해발고도 433-636m의 범위, 수평적으로 서중천 상류의 약 3.5㎞ 구간을 따라 그 분포가 제한되었다. 성널수국개체군은 지점마다 패치 모양으로 생육하고 있었다. 주로 계곡부의 폭이 7m 내외인 구간에 출현하였고, 본류보다 지류 하천에 더 많은 개체수가 분포하였다. 34지점 가운데 28지점에서 372개체가 본류에 위치하였고 지점별로 1-53개체 범위(평균 13(±12)개체)로 출현하였다. 특히 해발고도 550m 부근 약 2㏊ 면적의 지류 하천에서 6지점에 705개체가 확인되었으며 이는 전체 개체수 중 65%에 해당 하였다(Figure 1).
2. 군락분류와 구조
성널수국개체군의 식생조사는 총 9지점에서 수행되었고, 평균 출현종수는 23(±6)분류군이었다. 식물사회학적으로 상록활엽수림 식생인 붉가시나무-실꽃풀군집(Fico thunbergii- Quercetum acutae Choi 2012)에 속하며, 군집 표징종인 붉가시나무, 황칠나무, 비쭈기나무, 실꽃풀이 출현하였다 (Table 1). 붉가시나무-실꽃풀군집은 제주도의 상록활엽수림 중에서 가장 고해발지역에 분포하고, 난온대 식생과 냉온대 식생의 경계 지역에 위치하는 식물군락이다. 제주도 계곡 및 산지대 중하부의 용암 노출 지역에 분포하며, 급경사와 하천 유수의 침식작용으로 인해 토심 발달이 빈약한 환경 조건을 가진다. 또한 습윤한 수분 환경으로 인해 용암 거석과 교목의 수피에는 착생식물의 다양성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Choi, 2012). 성널수국개체군은 성널수국, 애기사초, 참꽃 나무의 구분종이 확인되었으며, 붉가시나무-실꽃풀군집의 서식처 내에서도 서중천의 계곡부 사면을 따라 수분조건이 양호하고 암석이 많이 드러난 급경사면에 주로 출현하였다.
성널수국개체군의 군락구조는 주로 3층이었으며, 수관층은 교목의 붉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서어나무, 졸참나무 등으로 상록활엽수와 하록활엽수가 혼합된 구성이 대부분 이었다. 교목층은 평균 높이 11(±2)m, 평균 피도 76(±5)% 였으며, 계곡의 물리적 교란이 빈번한 입지 환경에 위치하여 주변 삼림식생에 비해 수고가 비교적 낮았다. 관목층은 평균 높이 6(±1)m, 평균 피도 34(±5)%로 사스레피나무가 우점하였고, 굴거리나무, 덜꿩나무, 참꽃나무, 황칠나무 등 이 출현하였다. 초본층은 평균 높이 1m, 평균 피도 43(±17)%였으며, 제주조릿대, 고비, 애기사초, 좀딱취, 한라비비추 등의 초본식물과 성널수국, 산수국, 송악, 줄사철 나무 등의 관목 및 덩굴성 목본식물이 함께 출현하였다 (Table 1).
서중천 내 성널수국 비생육지를 조사하였을 때, 상부 비생육지(R1, Figure 1; Table 1)는 성널수국의 최상부 분포 위치 보다 해발고도가 약 40m 더 높은 지역으로 당단풍나무, 서어나무, 졸참나무, 제주조릿대를 구분종으로 하는 하록활엽수림의 서어나무-제주조릿대군집(Saso quelpaertensis-Carpinetum laxiflorae Kim 1992)이었다. 총 23분류군이 확인되었고, 난온대 상록활엽수림에서 나타나는 구실잣밤나무, 동백나무, 붉가시나무, 비쭈기나무 등의 상록수종이 출현하지 않았으며, 하록활엽수림대의 상급단위인 서어나무-제주조릿대군단(Saso quelpaertensis-Carpinion laxiflorae Kim 1992)의 주요종인 졸참나무, 당단풍나무, 서어나무의 피도가 높았다. 반면 하부 비생육지(R11, Figure 1; Table 1)는 성널수국 최하부 분포 위치보다 해발고도가 약 140m 낮은 지역으로 구실잣밤나무, 동백나무, 조록나무, 부처손, 한라비비추의 진단종을 포함하는 상록활엽수림의 구실잣밤나무-한라비비 추군집(Hosto venustae-Castanopsietum sieboldii Kim, Hukusima et Hoshino 1994corr. hoc loco)이었다. 총 30분류군이 출현하였으며, 성널수국 생육지보다 온난한 지역으로 구실잣밤나무, 동백나무의 피도가 높아졌고, 조록나무, 참식나무, 나도히초미의 출현이 특징적이었다. 한편 본 군집의 원기재(Kim et al., 1994)에서 제시된 표징종인 좀비비추(Hosta minor (Baker) Nakai)는 한라비비추(Hosta venusta F.Maek.; Jo and Kim, 2017)로 확인되었으므로 식생명명규약(Theurillat et al., 2020)에 따라 군락명을 수정하여 기재하였다. 이러한 지리학적 위치로 보면 성널수국개체군은 한랭한 기후 지역의 서어나무-제주조릿대군집과 온난한 기후 지역의 구실잣밤나무-한라비비추군집 사이에 출현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성널수국개체군의 종조성에서 P-NCD가 높은 식물종 10분류군은 서어나무, 사스레피나무, 성널수국, 제주조릿대, 붉가시나무, 애기사초, 사람주나무, 굴거리나무, 고비, 줄사철나무 순이었으며(Table 1), 이 중 7분류군이 목본성 식물이었다. 서어나무-제주조릿대군집에서 P-NCD가 높은 식물종은 서어나무, 제주조릿대, 사스레피나무, 졸참나무, 산수국, 당단풍나무, 굴거리나무, 애기사초, 고비, 송악 순이며, 구실잣밤나무-한라비비추군집은 산수국, 사스레피나무, 동백나무, 고비, 진고사리, 낚시제비꽃, 부처손, 나도히초미, 폭이사초, 애기사초 순이었다. 세 군락의 공통종은 사스레피나무, 산수국, 고비, 애기사초이며, 이들은 서중천을 따라 높은 출현 빈도를 보인 식물종이었다. 서어나무-제주조릿대군집의 공통종은 서어나무, 제주조릿대, 굴거리나무이며, 이들은 제주도 하록활엽수림의 주된 구성종이다. 반면 구실잣밤나무-한라비비추군집의 공통종은 적었으며, 온난한 지역에 출현하는 동백나무, 조록나무, 참식나무, 백량금 등은 성널수국개체군에 출현하지 않거나 기여도가 낮았다.
3. 서식처 환경 조건
성널수국개체군은 붉가시나무-실꽃풀군집의 삼림식생이 발달하는 산지 사면에서 계곡으로 이어지는 이행대(ecotone)에 제한적으로 위치하였다(Figure 2). 성널수국은 서중천 계곡부 사면에서 연중 최고수위의 바로 상부에 위치하였으며, 본 위치는 범람 시 유수의 교란에 어느 정도 노출되어 있는 장소였다. 암석이 드러난 급경사면에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물길에 접해있어서 숲 지붕이 열린 개방 수면 방향으로 가지를 늘어뜨리는 특유의 수형을 형성하였다. 성널수국은 교목 식물종이 숲 지붕을 덮고 있는 반음지 환경에 주로 출현하는 반면, 상관이 완전히 열린 입지에는 출현하지 않았다. 또한 계곡 배후의 경사가 완만해지는 산지 사면에는 제주조릿대가 밀집한 삼림식생이 형성되어 있어서 성널수국의 생육이 불량하거나 거의 출현하지 않았다.
성널수국 생육지의 개체군(조사구 9개) 및 비생육지의 식물군락(2개)과 붉가시나무-실꽃풀군집 원기재의 식물 군락(4개; Choi, 2012)에 대한 종조성 및 환경 변수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였다(Figure 3). 총 15개의 조사구는 제1축(eigenvalue = 0.407)과 제2축(0.299)에 의해 CCA 좌표가 결정되었다. 환경 변수는 북향성과 해발고도가 가장 큰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널수국개체군의 서식처 환경 중에서 경사도는 평균 45(±20)°, 암석노출률은 평균 62(±11)%, 사면방향은 북쪽 경향성을 보였으며, CCA 환경 변수는 경사도, 암석노출률, 북향성, 해발고도가 높은 경향성을 보였다. 붉가시나무-실꽃풀군집은 성널수국개체군과 유사한 해발고도 범위를 가지지만, 동남 사면의 입지로 성널수국개체군과 구분되었다. 상부 비자생지인 서어나무-제주조릿대군집은 북향성이 강하고 해발고도가 높은 쪽으로 치우쳤으며, 성널수국개체군의 공통종으로 서어나무, 제주 조릿대, 붉가시나무, 사스레피나무와 같은 광분포 식물종을 포함하고 있어 확실히 구분되지 않았다. 하부 비생육지인 구실잣밤나무-한라비비추군집은 동일한 북사면 입지이지만, 낮은 해발고도의 온난한 지역으로 동백나무, 조록나무, 참식나무, 백량금 등이 출현하여 뚜렷하게 구분되었다.
4. 식물상의 생태 형질
‘성널수국개체군 식물상(flora of Hydrangea luteovenosa population; hF)’은 43과 57속 63종 1아종 3변종 1품종으로 총 68분류군이었다(Table 1). 제5차 전국자연환경조사 식생 데이터에 의한 제주도 ‘상록활엽수림 식물상(flora of evergreen broad-leaved forest; eF)’은 총 167분류군이며, 제주도 ‘하록활엽수림 식물상(flora of deciduous broadleaved forest; dF)’은 총 255분류군이다. 성널수국개체군 식물상의 생육형(growth form)은 교목, 광엽초본, 관목, 덩굴, 착생, 화본형초본 순으로 비율이 높았다(Figure 4a). 이러한 스펙트럼은 상록활엽수림 식물상과 유사하게 나타났으며, 하록활엽수림과 비교하였을 때 교목, 관목, 덩굴, 착생식물의 비율이 더 높았다. 특히 착생식물은 성널수국개체군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으며, 부채괴불이끼, 괴불이끼, 고란초 등과 같은 암석 표면이나 수피에 주로 붙어사는 양치식물을 포함하였다. 성널수국개체군의 상록성 식물(Figure 4b) 및 목본성 식물(Figure 4c) 비율은 상록활엽수림 식물상과 거의 유사하게 나타났다. 양치식물의 비율은 세 식물상 모두 큰 차이가 없었다(Figure 4d).
한반도 적색목록의 위협 범주에서 위급(CR)에 해당하는 식물종은 없었고, 위기(EN)는 1분류군, 취약(VU)은 2분류군이 해당되었으며, 특산식물은 4분류군이었다. 위협 범주와 특산식물에 포함되는 식물종 6분류군은 개족도리풀, 성널수국, 실꽃풀, 제주조릿대, 한라개승마, 한라비비추였다(Table 2). 이중 성널수국, 실꽃풀, 한라개승마는 한라산의 습윤한 환경조건에 제한적으로 분포하는 식물종이었다. 귀화식물은 출현하지 않았다.
고찰
1. 식생지리학적 분포 및 서식처 특성
성널수국의 일본 분포는 규슈, 시코쿠, 혼슈의 시즈오카현까지 비교적 넓은 편이며(Iwatsuki et al., 2001;Moon et al., 2004;Satake et al., 1989), 이러한 지역은 일본의 난온대 상록활엽수림이 발달하는 지역이다(Fujiwara, 1981). 일본에서 성널수국을 진단종으로 하는 난온대 식물군락은 일본전나무-성널수국군집(Hydrangeo-Abietetum firmae Fujiwara 1981)과 붉가시나무-황산계수나무군집(Skimmio-Quercetum acutae Suz.-Tok. et Sumata 1964)이 있으며(Fujiwara, 1981), 긴키 및 시코쿠 지방의 편백조림지, 삼나무조림지의 숲바닥에 성널수국이 출현하기도 한다(Sakai et al., 2005;Sakai et al., 2010). 이들 식물군락은 참가시나무-붉가시나무군단 (Quercion acuto-myrsinaefoliae Fujiwara 1981)이라는 삼림 식생에 속하는데, 본 군단은 일본에서 냉온대 하록활엽수림에 인접해 있는 가장 한랭한 난온대 상록활엽수림으로 냉온대 식물종이 섞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Fujiwara, 1981;1986).
본 연구 결과에서 제주도 성널수국개체군은 식물사회학적으로 붉가시나무-실꽃풀군집 내에 출현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또한 한랭한 냉온대 기후의 서어나무-제주조릿대군집과 온난한 난온대 기후의 구실잣밤나무-한라비비추군집 사이에 위치하였다. 붉가시나무-실꽃풀군집은 구실잣밤나무- 황칠나무군단(Dendropanaco-Castanopsion siebolii Kim, Hukusima et Hoshino 1994)이라는 상급단위에 포함되며, 이 군단 또한 일본과 마찬가지로 제주도에서 냉온대와 접해 있는 가장 상부에 위치한 난온대 상록활엽수림대이다(Kim et al., 1994). 본 군단과 군집은 난온대성 상록활엽수와 냉온대성 하록활엽수가 혼생하는 종조성을 가진다(Choi, 2012;Song, 2007). 실제로 성널수국개체군은 붉가시나무, 황칠나무, 사스레피나무 등의 난온대 상록활엽수와 서어나무, 졸참나무, 사람주나무 등의 냉온대 하록활엽수가 혼합된 종조성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분포 현황을 종 합해 보면 성널수국은 냉온대 하록활엽수림대에 접해있는 가장 한랭한 난온대 상록활엽수림대에 분포하며, 성널수국의 제주도 내 분포와 일본 내 분포는 식생지리학적으로 서로 대응성을 가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널수국은 해양성 기후인 일본에서는 넓은 지역에 걸쳐 삼림 내에 출현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제주도 한라산의 해발고도 400-600m에 위치한 서중천 상류에만 그 분포가 제한되었다. 특히 산지 사면의 삼림식생과 계곡부 관목식생의 전이대 서식처에 위치하였다(Figure 2). 제주도개체군의 종 조성에서 교목 및 관목과 같은 목본식물의 다양성과 우점도가 높았으며, 이는 우천 시 유수와 범람으로 인해 물리적 교란이 일어나는 급경사의 서식처 환경 특성으로 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에서도 성널수국을 진단종으로 하는 식물 군락 가운데 일본전나무-성널수국군집과 너도밤나무-조릿 대군집(Sasamorpheto-Fagetum crenatae Suz.-Tok. 1949) 의 좀댕강나무아군집(abelia subassociation)은 급경사지의 암석이 많은 서식처 환경을 특징으로 한다(Fujiwara, 1981;Karizumi and Tokui, 1956). 또한 제주도 성널수국개체군은 인접한 계곡의 영향으로 공중습도가 높은 환경 조건으로 인해 부채괴불이끼, 괴불이끼, 고란초 등과 같은 착생 양치 식물을 포함하였다. 이러한 생태 특성으로부터 성널수국은 토심이 얕은 불안정한 지형 환경과 수분 조건이 양호하게 유지되는 입지를 주된 서식처로 삼는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의 현장답사를 통해(2024년 6월) 성널수국은 효고현(혼슈 남부), 에히메현 및 고치현(시코쿠)의 북위 33-35°, 해발고도 280-1,400m 범위에서 숲 바닥, 임연 및 습윤한 절벽 등의 다양한 서식처 환경에 생육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일본 분포역으로 미루어봤을 때 성널수국은 일본 분포 지역과 유사한 위도(북위 35° 이하)의 한반도 남부 지역에도 생육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제로 제주도의 서중천 상류 일대에만 분포가 한정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일본의 해양성 기후와 동북아시아의 대륙성 기후의 중간 형태인 제주도 섬 유형 기후 조건에 의한 것으로 판단된다 (Kim, 1992;2006). 제주도 기후 조건은 유사한 위도에 위치한 일본 지역에 비해 기온이 낮고 강수량이 적은 경향성이 나타난다. 성널수국은 북서쪽의 분포 경계 지역인 제주도에서 건조에 의한 수분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습윤한 미시서식처로 피난했을 것이며 그곳이 주로 서중천 가장자리의 북사면 입지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성널수국의 제주도 집단이 일본집단에 비하여 식물의 전체적인 크기가 작은 것으로 보고된 바 있으며(Choi et al., 2017), 이러한 연구 결과 또한 제주도의 기후 및 서식처 조건이 일본에 비해 생육과 생장에 불리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2. 번식 기작 특성
서중천 계곡 사면과 같은 장소는 급한 경사 또는 하천 범람의 교란으로 불안정한 토양 환경으로 대부분의 식물종에게 생육이 불리한 조건이지만 오히려 성널수국이 다른 종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장소였다. 이는 성널수국이 가진 영양생식(vegetative reproduction) 능력 덕분인 것으로 판단된다. Sim et al.(2023)은 성널수국 삽목 증식 실험에서 95% 이상의 높은 영양생식 능력을 확인한 바 있다. 또한 Choi et al.(2017)은 제주도집단이 일본집단에 비해 유전자 다양성이 극히 낮고 대부분 영양생식을 통해 군락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지리적으로 일본과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집단과 모든 대립형질(alleles)을 공유한다고 보고하였다. 실제로 2023년 6월 제주도 현장조사에서 확인된 1,077개체 중 개화한 개체는 임도에 가까운 계곡 사면의 밝은 입지에서 단 1개체만을 확인할 수 있었고, 8월과 11월 현장조사에서 결실한 개체는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선행 연구들과 본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서중천 일대에 분포하는 성널수국은 대부분 무성생식을 통해 분포를 확장한 것으로 판단된다. 제주도개체군이 하천변을 따라 패치 모양으로 군락을 이루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폭우와 범람이 잦은 한라산의 기상 및 지형 환경은 제주도 성널수국에 있어서 위협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유용한 무성생식의 기회로 작용함을 예측할 수 있었다.
한편, 같은 속(genus)의 나무수국(Hydrangea paniculata Siebold)은 일본에 자생하는 하록활엽 관목으로 숲 지붕이 열린 장소인 숲 틈(early and late gap)에서는 유성생식(sexual reproduction)을 하고, 너도밤나무림과 같이 숲 지붕이 잘 발달한 성숙한 삼림 내(building and mature canopy)에서는 영양생식하는 번식전략을 가진다. 이들의 생식방식은 삼림의 천이단계에 따라 달라지는 빛 조건과 토양 조건에 크게 영향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Kanno and Seiwa, 2004). 근연종인 나무수국 번식 기작의 관점에서 보면 성널수국은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물리적 교란에 의해 양호한 빛 조건과 정착이 용이한 새로운 토지가 형성되면 이를 유성생식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며, 수관이 잘 발달한 성숙한 숲의 불량한 빛 조건 입지에서는 영양생식으로 개체군을 유지하거나 확장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3. 한반도 성널수국의 보전 전략
성널수국의 적색목록 평가는 일본의 경우 혼슈 중남부에서 규슈 지역까지 비교적 넓게 분포(Iwatsuki et al., 2001)하여 희귀식물로 취급되지 않지만(National Museum of Nature and Science, 2024), 한국에서는 제주도 한라산의 매우 제한적인 지역에만 분포하는 점을 고려하여 Kim(2009)은 위급 (CR) 범주로, Korea National Arboretum(2021)과 National Institute of Biological Resources(2021)는 취약(VU D2) 범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Kim(2009)은 위급 범주에 대한 평가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고, 나머지 두 기관이 제시한 평가 정보도 ‘발생 가능한 미래 위협요인’을 명확히 수반하지 않아서 IUCN의 적색목록 평가기준 D를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러한 평가 범주의 차이는 성널수국의 정확한 개체수, 분포 면적, 생육환경 및 번식 기작과 같은 구체적인 평가 정보의 부재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연구를 통해 조사 지역 내에서 성널수국 1,077개체 를 확인하였는데, 이는 선행연구(Choi et al., 2017;Moon et al., 2004;Yang et al., 2021)의 결과에 비해 약 3.8배나 높은 수치이며, IUCN의 적색목록 평가기준에 따라 보전등급이 변경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성널수국 서식처는 한라산국립공원의 중산간 지역에 위치하여 토지개발, 환경오염과 같은 위협요인에 대한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 되며, 한라개승마, 실꽃풀 등과 같은 희귀식물의 출현과 귀화식물의 부재로 자연성이 높고 생태적으로 안정된 지역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분포가 제한적인 희귀식물은 그 지역의 기후뿐만 아니라 입지 환경 조건에 크게 영향받으며, 자생지의 환경 조건이 열악할수록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Nicolè et al., 2011;Ohlemüller et al., 2008;Wamelink et al., 2014). 성널수국의 제주도 분포는 대륙성 기후 지역에 접해있어 기후적으로 한랭한 북서쪽 경계 지역에 위치하고, 유전적 다양성이 매우 낮아 환경변화에 대한 대응이 취약할 것이며, 이러한 제한된 분포와 생태적 지위의 희귀성으로 인해 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보다 구체적인 보전 전략 수립이 요구된다.
희귀식물의 보전 전략은 주된 위협요인을 파악한 후 주요 서식지를 선정하는 것으로 시작되며, 이러한 서식지 선정은 희귀식물의 생존과 보전에 필수적이다(Sharrock, 2020). 본 연구를 통해 성널수국은 제주도 내에서 냉온대 하록활엽수림대에 접해있는 난온대 상록활엽수림의 상부 지역에 분포하며, 서중천 계곡부의 북사면 급경사지라는 독특한 지형적 환경 특성을 가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성널수국이 분포하는 구간 중 하천 상류에 해당하는 해발도고 550m 지점의 약 2㏊ 면적의 지류 구간에서 전체 개체수의 65%가 밀집 분포하였다. 이는 지류 하천이 제주도 건천의 특성상 우천 시에 발생하는 유수의 교란을 받는 급경사지 서식처이지만, 본류에 비해 하폭이 좁아 상대적으로 물이 빨리 빠지고 토사 및 낙엽과 같은 퇴적물이 쌓이면서 성널수국의 부러진 가지 및 뿌리 조각이 정착할 기회가 빈번하였을 것이다. 또한 숲 지붕이 어느 정도 닫혀있는 반음지 환경이 조성되어 개방 수면에 인접한 본류보다 공중 습도가 습윤하게 유지될 수 있어 무성생식에 의한 번식이 집중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성널수국 제주도개체군을 효율적으로 보전하기 위해 해발도고 550m 지점의 밀집 서식처(2ha)를 중점보호구역(priority conservation area)으로 선정하여 보호하는 방안을 제안한다(Figure 1). 일본의 넓은 분포지역으로 미루어봤을 때 한반도 남부지역까지 생육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제로 제주도의 서중천 상류 일대에만 분포가 한정되는 것은 기후적, 지리적 및 식생학적 환경 조건의 제한성 때문으로 판단된다. 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성널수국의 생육 가능한 환경 범위 및 적응력에 대한 추후 연구와 함께 현지외 보존 전략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분포 제한성이 뚜렷한 성널수국개체군은 하천 상류로의 북상이나 하류로의 남하와 같은 분포 영역의 변화에 대한 장기 기후변화 모니터링 대상종으로서 그 활용 가치가 매우 높다고 판단되므로 지속적인 현지내 모니터링이 요구된다.